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작품의 저자는 악비(岳飛, 1103~1142)이다. 그는 남송(南宋) 시대의 명장이자 전략가, 서예가, 시인으로 특히 민족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 악비는 소흥(绍興) 11년(1141)까지 크고 작은 전투에 수백 차례 참여, 지휘했다. 금(金)나라 군대가 송나라를 공격할 때 금나라에 대항해 건강(建康, 지금의 강소성 남경)을 되찾았다. 소흥(紹興) 10년(1140) 금나라의 장군 완안종필(完顔宗弼)이 맹약을 깨고 송나라를 공격하자 악비는 군대를 이끌고 북벌을 감행했다. 송나라 고종(高宗) 조구(趙構)와 재상 진회(秦檜)가 한목소리로 화친을 주장해 악비는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혔다가, 1142년 1월 결국 누명을 쓰고 살해당했다.
滿江紅 만강홍mǎn jiāng hóng 岳飛 악비 Yuè Fēi怒髮衝冠, nù fà chōng guān, 노한 머리카락이 솟아 관을 찌르고,憑欄處、瀟瀟雨歇.píng lán chù、xiāo xiāo yǔ xiē.난간에 기대서니 세차게 내리던 비가 그치네.抬望眼、仰天長嘯,tái wàng yǎn、yǎng tiān cháng xiào,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며 길게 휘파람 부니,壯懷激烈.zhuàng huái jī liè.굳센 마음 맹렬히 솟구치는 구나.三十功名塵與土,sān shí gōng míng chén yǔ tǔ,삼십년 동안 세운 공은 먼지가 되어 흙과 같으니,八千里路雲和月.bā qiān lǐ lù yún hé yuè.팔천 리 길을 구름과 달빛 아래 전전했지.莫等閒、白了少年頭,mò děng xián、bái le shào nián tóu,젊음을 부질없이 보내고 백발이 되고 나서,空悲切!kōng bēi qiè!헛되이 애통해하지 말아야지.靖康恥,jìng kāng chǐ,정강의 치욕을,猶未雪.yóu wèi xuě.아직 씻어내지 못했으니.臣子恨,chén zǐ hèn,신하의 한은,何時滅!hé shí miè!언제 없어질 수 있을지. 駕長車踏破,jià cháng chē tà pò, 전차를 타고 쳐부수리, 賀蘭山缺.hè lán shān quē.하란산의 적진을.壯志饑餐胡虜肉, zhuàng zhì jī cān hú lǔ ròu,장대한 뜻을 품고 적군의 살로 허기를 채우고,笑談渴飮匈奴血.xiào tán kě yǐn xiōng nú xuè.웃고 떠들며 적들의 피로 갈증을 달래리라.待從頭、收拾舊山河,dài cóng tóu、shōu shí jiù shān hé, 다시금 옛 강산을 수복하고,朝天闕.cháo tiān què.황제를 알현하리라.① 怒髮衝冠(노발충관) : ‘화가나 머리카락이 곤두서 관을 추켜 올리다.’ 매우 화가 난 모양. 관(冠)은 곤두선 머리카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자를 가리킴.
② 瀟瀟(소소) : 비가 세찬 모양
③ 長嘯(장소) : 큰 소리로 부름.④ 八千里(팔천리) : 각지를 다니며 많은 전쟁을 치르고 밤낮으로 먼 길을 다닌 것을 가리킴.⑤ 靖康恥(정강치) : 정강원년(靖康元年, 1126) 금(金)이 북송(北宋)의 수도 변경(汴京)을 침공하고 다음 해에 휘종(徽宗)과 흠종(欽宗) 두 황제를 포로로 잡아간 일을 가리킴. ⑥ 賀蘭山(하란산) : 영하회족자치구와 내몽고자 치구의 경계에 있음. 일설에는 한단시 자현(邯鄲市磁縣)에 있는 하란산(賀蘭山)을 가리킨다고도 함. 여기서는 송(宋)과 금(金)의 경계에 있는 산을 말함.⑦ 朝天闕(조천궐) : 황제를 알현함. 天闕(천궐)은 원래 궁전 앞의 누각을 말하나, 여기서는 황제가 생활하는 곳을 가리킴. 이 사(詞)는 남송(南宋)의 민족영웅 악비가 30세 처음 출전할 때 지은 것이라고도 하고 1136년 두 번째 북벌을 위해 출사할 때 지은 것이라고도 한다. 작품의 상편에서는 적군에게 중원을 빼앗긴 비분한 감정과 자신의 공로가 쓸모없게 된 애석한 상황을 표현하였고 계속해서 자신의 장지(壯志) 실현을 위해 노력할 것을 나타냈다. 하편에서는 적들에 대한 깊은 원한과 조국을 통일하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을 토로하였다.
강개비분한 애국정서와 영웅적 기개를 노래한 이 작품은 후인의 위작이라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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