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전국시대에는 아침에는 초나라 편에 섰다가 저녁에는 진나라 편으로 돌아서는 ‘책사’(策士·권력가 곁에서 머리를 굴리던 참모)들도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그런 이들을 두고 말했다.
“입은 살아있지만 신의는 죽었다”.
요즘 군위 선거판을 바라보는 군민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말들이 나온다.
앞서 김진열 현직 군수와 김영만 전 군수의 국민의힘 경선은 예상보다 쉽게 승부가 갈렸다. 이후 이어진 가처분 신청 국면도 큰 흐름을 바꾸지 못한 채 정리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잠잠해지는가 싶던 군위군 선거판은 다시 흔들리고 있다.
김정재 국민의힘 국회의원의 선임 비서관을 지내고, 포항의 박승호 예비후보를 밀어주던 이기만 씨가 민주당 군수 공천을 받고 등장하면서다. 김영만 전 군수 측 인사로 알려진 그의 등장으로 군위가 술렁이고 있다.
지역에서 의외라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단순한 당적 이동 때문만은 아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군수가 민주당 인사들과 사진을 찍었다며 비판하던 인물로 기억하는 군민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군위에서는 “도대체 지금 누구를 어디까지 믿어야 하느냐”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반복되는 이동, 흔들리는 선거판정치적 선택은 자유다. 당적 이동 역시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러나 군민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건 선택 자체보다 변화의 속도다. 어제까지 빨간 점퍼를 입고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색 점퍼를 입고 나타나는 장면을 군민들은 기억한다.
일부 군민들 사이에서는 당을 바꾸라는 권유 전화 이야기까지 나오면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김영만 전 군수를 지지했던 내부에서도 “김영만을 지지했지 민주당까지 지지하는 건 아니다”라는 반응과 “정치라는 게 원래 그런 것 아니냐”는 말이 엇갈린다.
군위에서는 한때 ‘라면을 먹어야 하느냐, 빵을 먹어야 하느냐’는 우스갯소리도 돌았다. 김진열 군수를 빗댄 ‘진라면’, 김영만 전 군수의 별명인 ‘빵만이’를 두고 나온 말이다. 웃고 넘기던 농담도 이제는 “군위 정치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는 자조로 이어진다.◇군민이 보는 건 결국 ‘말의 책임’흥미로운 건 군민들의 분위기다. 예전처럼 쉽게 흥분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바라본다.반세기 전 고무신 한 켤레에 표심이 움직이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군민들은 이제 ‘누가 더 크게 외치느냐’보다 ‘누가 끝까지 자기 말에 책임을 지는지’를 더 눈여겨본다.
군민들도 이제 안다. 정치가 얼마든지 색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문제는 이동 자체가 아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던 말들이 너무 빨리 사라졌다는 점이다. 사람은 줄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어제의 말까지 오늘의 거짓말로 만들 수는 없다.
다만 이기만 후보가 민주당의 지원을 바탕으로 군위군수에 도전하겠다고 밝히며 정치적 책임을 감수하겠다고 나선 점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결국 중요한 건 당의 색깔이 아니다. 앞으로 어떤 말과 행동으로 군민들을 다시 설득할 수 있느냐다.
그리고 군민들은 지금 그 과정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민심은 생각보다 냉정하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순간 정치인은 가장 초라해진다. 김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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